돈의 기원은 중세 유럽의 금세공업자들의 '보관증'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앞서 알아보았습니다. (앞 글 링크)
그런데 이것이 오늘날 현대의 돈과 보관증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전 세계의 지폐 대부분이 귀금속과의 교환이나 태환을 보증하지 않는 것이 큰 차이점입니다.
당시 유럽에서의 보관증은 화폐와 같은 일종의 신용 역할을 하게 된 이유는 금과 교환해주겠다는 증서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사용되는 지폐의 대부분 귀금속과 교환해주지는 않습니다. 대다수의 화폐는 각국의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은행권'입니다. 단지 중앙은행이 이 은행권의 가치를 보장해주는 것이지 귀금속과의 교환은 이제 옛날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예전도 아주 오래는 아니고 불과 약 50년 전까지만 해도 지구상의 지폐 중 대부분은 어떠한 형태로든 간에 귀금속과 바꿔준다는 보증과 약속이 있었습니다. 즉, 세계의 지폐는 금본위제가 표준이었습니다. 금 그 자체 또는 금의 태환권을 화폐로 삼아서 유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략 50년 전 즈음에 발생한 닉슨 쇼크라는 사건으로 인해서 전 세계의 지폐는 귀금속과의 교환이 보장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미국 달러를 더 이상 금하고 교환해주지 않겠다는 성명을 발표한 것입니다. 왜 미국 달러가 더 이상 금과 교환하지 않게 되는 것만으로 전 세계의 화폐랑 금 사이의 관계와 연결이 사라지게 된 것일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20세기 있었던 2번의 세계대전 전후 사정을 알아야 합니다.
전후 처리 과정에서 미국의 부상
1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주요 국가들은 자국 화폐를 금이나 은으로 교환 가능했습니다. 금이나 은과의 교환을 보증해줌으로써 자국 화폐의 가치를 담보해준 것입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을 통해 유럽 국가 중 대부분 국가에서는 금의 보유량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발행한 화폐를 더 이상 금하고 교환해 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즉, 각국의 화폐의 가치가 매우 불안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미국만큼은 금을 보유한 수량이 생각보다 크게 증가했습니다. 미국은 자국 내에서도 자원이 풍부하고 공업과 금융도 발달하여 1차 세계대전 이후로 2차 세계대전 발생 전까지 세계 경제 무대에서 홀로 독주했습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보니 미국은 전 세계에 있는 금을 70%나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브레튼우즈 체제
1944년에 미국의 브레튼우즈라는 도시에서 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 세계 경제와 금융 체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여태 사용되어온 금본위 체제는 세계의 통화의 가치를 유지해줬고 안정시켜 줬지만, 이제는 각 국가가 금본위제를 지속시킬 만큼의 금을 충분하게 가지고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금이 다 미국으로 유입되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미국이 달러와 금의 태환을 보장해주고 몇몇 나라에서는 미국 달러에 대한 자국 통화의 가치를 고정시켜서 간접적으로나마 금의 교환을 보장해주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2차 세계대전의 종전 후 미국 경제에도 그림자가 엄습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출이 줄고 수입이 급증하는 무역적자가 지속되었던 것입니다. 무역의 대금으로 미국 달러를 받았던 나라들이 그 달러를 받자마자 금으로 다 바꿨습니다. 그 때문에, 미국에 있는 금이 금방 대량으로 유출되는 꼴이 되었습니다. 세계의 금을 70%나 가지고 있던 미국이 이 추세대로라면 금이 고갈되는 상황으로 내몰린 것입니다.
금본위제 폐지
결국 1971년에 미국 닉슨 대통령은 달러와 금의 교환을 정지하는 발표를 했습니다. 이 성명으로 인해서 많은 나라들의 통화는 이제 금하고 상관없게 되었습니다. 예상과는 다르게 신기하게도 초기에 대혼란 없이 세계 각국의 통화는 달러와 함께 그대로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비록 금하고는 교환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해서 각국의 통화는 이미 사회 전반에 완전히 스며들었고 국가에서 발행한다는 부분에서 신용 역시 보장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비록 각 나라에서 통화와 금을 태환해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국 통화의 신용을 유지하기 위해서 각국의 중앙은행에 외화와 금을 대량으로 준비해두기도 합니다. 혹시나 자국 통화의 가치가 폭락하거나 위기가 닥치더라도 외화와 순금을 팔아서 자국 통화를 매수하게 되면, 이로써 자국 통화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인류의 역사 전체를 놓고 볼 때, 오늘날 21세기처럼 이 정도로 광범위하게, 이만큼이나 오랫동안, 화폐에서 귀금속의 가치로 뒷받침되지 않는 각각의 통화가 유통되어 온 시대는 없었습니다. 몇백 년 동안이나 오히려 금이나 은의 가치로 보장되어왔었던 시간이 더 길었던 것에 비하면 말입니다. 현재에도 지금의 통화 제도는 어쩌면 우리들의 시행착오 과정을 통해 더 다듬어지고 있는 또 하나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